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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변화를 실패하는가? Hunger의 부재 –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주역 계사전에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란 말이 있습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입니다.


간단하게 ‘궁변통구窮變通久’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궁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자는 ‘다할 궁’입니다. 다했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이르렀단 소리입니다. 무엇을 다하고 끝까지 이르렀단 것일까요?


예를 들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 방법을 끝까지 고수했으나 끝끝내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은 한 개인, 하나의 기업, 특정 시대 등이 극에 달하면 결국 변화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궁이라는 것은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시도를 모두 다 해봤거나, 이미 성공을 해서 결실을 맛보고 있거나, 사면이 꽉 막혀서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는 상황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리든, 풀리지 않든 간에 결국 어느 시점이 되면 ‘궁’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변화한다는 소리인데 굳이 궁변통구라는 내용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바로 ‘변화’에 민감하고 ‘변화’를 체감하는 육감을 발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1번 변화할 때, 당신은 10번 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상황에 치여서 ‘궁즉변(궁하면 변한다)’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궁즉변(궁하면 변한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계발서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시간은 공평하다. 누구나 다 24시간이 주어져있다.


이 말은 얼핏 보면 타당한 말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 간과된 게 있습니다. 같은 24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사람마다 체감하는 변화의 속도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1년을 살아도, 남들의 10배가 되는 변화를 체감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보통 사람들 만큼의 변화조차도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란 말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변화를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는 시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도 세상도 그리고 인생도 모두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변화가 정체된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됩니다. 쉽게 말해,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끝까지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빈도수가 줄고, 속도가 늦춰집니다.


빠르게 현 상황을 극에 이르도록 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 없는 유보상태가 지속됩니다. 정량적 시간이 똑같이 24시간 주어지는 것은 의미 없는 논의입니다. 무엇 하나도 극에 이르지 못하는 인생은 그저 정체 상태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1시간을 보내도 변화의 체감 속도는 수십 배 차이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이에나가 죽은 사냥감을 모색하듯 집요하게 변화의 체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연설 마지막에 ‘Stay Hungry, Stay Foolish’란 말을 했습니다. 즉 성공했음에도 배고프라는 것입니다. 성공의 결실을 맛보더라도 배고픔을 느끼며 다음 변화를 포착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변화를 포착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란 이야기입니다.


『이웃집 CEO』는 2,600명의 리더들을 1만 3,000시간의 인터뷰와 10만 쪽 이상의 기록을 검토하여 분석한 책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CEO는 대기업에서 1인 기업에 이르기까지 회사의 대표를 의미합니다.


성공한 리더 혹은 성공한 CEO는 4가지 특성과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그중 4번째에 해당하는 특성이 바로 주도적 적응입니다. 즉 이제 막 변화가 시작되는 미지의 세계에 주도적으로 올라타려고 하는 적응력을 의미합니다.


『이웃집 CEO』저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주도적으로 적응하는 CEO가 성공할 확률은 변화에 직면할 때까지 기다리는 CEO보다 약 7배 높다고 말합니다.


주역계사 하편 2장에서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에 뒤이어 ‘자천우지 길무불리(自天祐之 吉无不利)’란 말이 나옵니다.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니 길하여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자천우지 길무불리’만 떼어놓고 본다면,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하늘이 돕는다는 말로 들립니다.


하지만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에 뒤이어 ‘자천우지 길무불리’가 나왔습니다. 맥락적으로 해석한다면, 자기 자신을 돕는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함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변화에 대한 Hunger를 지니고 행동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Hunger란 배고픔, 결핍, 갈망을 의미합니다.


즉, 변화에 대한 배고픔, 결핍, 갈망이 전제된 상태에서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하늘이 돕는다는 뜻입니다.


하늘은 그저 생각 없이 성실한 사람들, 변화의 흐름과 관련 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 구제하려면, 끊임없이 ‘나’에 대한 변화, ‘세상’에 대한 변화, ‘인생’의 변화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이 그 사람을 돕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변화에 절박한 것은 당신의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지위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해서 성공의 과실을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변화에 절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나가고 있든, 잘나가고 있지 않든 변화에 대한 절박한 마음이 있는가가 핵심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좋은 의미로) 끝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이르렀다 함은 결국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 지점에 깨어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향후 인생을 결정짓게 됩니다. 목표 달성 이후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이 많은 이유입니다.


결국 한 개인이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궁’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이나 사물은 극에 이르면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민감성과 육감을 발달시켜서 무엇이 되었건 간에 빠르게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극에 이르지 못하면 정체하게 되고, 정체하게 되면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세상’도, ‘인생’도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변화를 포착해서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뛰어들어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과 똑같은 하루 24시간이 주어져도, 변화를 체감하는 삶의 속도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10년과 같은 100년을 사는 사람이 있고, 1000년과 같은 100년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변화에 대한 민감성이 동등하게 주어진 객관적 시간의 양을 왜곡시켜 삶의 성과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변화에 민감하지 않으면, 결국 자연스럽게 시대에 도태돼서 ‘궁’에 이르게 되고, ‘변’하게 됩니다. 외부의 변화에 치이는 형태로 ‘궁즉변’하지 마시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포착해서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궁즉변’을 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나’, ‘세상’, ‘삶’에 대한 변화에 어느 만큼 배고프고, 결핍되고, 갈망하는지가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이웃집CEO』, 엘레나 보텔로, 킴 파월, 탈 라즈, 소소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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